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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스완 (WonderSwan)

게임보이의 창조주가 만든 최후의 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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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 소개

1999년 3월 4일, 장난감의 명가 반다이가 출시한 '원더스완(WonderSwan)'은 휴대용 게임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애잔한 서사를 품고 있는 기기입니다. 이 하드웨어의 설계자는 다름 아닌 닌텐도에서 '게임보이'와 '게임 & 워치'를 탄생시키며 전설이 된 요코이 군페이(Yokoi Gunpei)였습니다. 버추얼 보이의 실패 후 닌텐도를 떠난 그는 자신의 회사 '코토(Koto)'를 설립하고 반다이와 협력하여, 자신이 평생을 바쳐 구축한 닌텐도 제국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원더스완은 요코이 군페이의 평생 철학인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기술(Lateral Thinking with Withered Technology)'이 극한까지 추구된, 그의 마지막 유작(遺作)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기기의 출시를 보지 못하고 1997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더스완의 가장 큰 혁신은 '화면 방향의 자유로움'에 있었습니다. 기기를 가로로 쥐면 일반적인 횡스크롤 게임을 즐길 수 있고, 90도로 돌려 세로로 쥐면 슈팅 게임이나 퍼즐 게임에 최적화된 세로 화면 모드로 변신했습니다. 이는 왼쪽에 두 개의 독립된 십자키(Y버튼군, X버튼군)를 배치한 독창적인 설계 덕분이었습니다. 또한, 게임보이보다 더 뛰어난 배터리 효율을 자랑했습니다. AA 건전지 단 하나만으로 30시간에서 최대 40시간까지 구동되는 경이로운 전력 관리 능력은 당시 컬러 화면과 백라이트를 내세우며 배터리를 광속으로 소모하던 경쟁 기기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강점이었습니다. 출시 가격 또한 4,800엔이라는 파격적인 저가 정책을 펼쳐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반다이는 자사가 보유한 강력한 캐릭터 IP(지적재산권)를 총동원하여 소프트웨어 라인업을 구축했습니다. '디지몬', '건담', '원피스' 등 인기 애니메이션 기반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는 캐릭터 게임 머신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했습니다. 여기에 스퀘어(현 스퀘어 에닉스)의 전격적인 참전은 원더스완 진영에 천군만마와도 같았습니다. 당시 닌텐도와 결별 상태였던 스퀘어는 원더스완용으로 파이널 판타지 1, 2, 4를 리메이크하여 발매했고, 이는 닌텐도 독주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며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2000년에는 컬러 화면을 탑재한 '원더스완 컬러', 2002년에는 잔상을 개선한 '스완크리스탈'을 연이어 출시하며 한때 일본 휴대용 시장 점유율 10%를 넘기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원더스완은 시대를 너무 늦게 만났거나, 혹은 너무 강력한 적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2001년, 닌텐도가 16비트를 건너뛰고 32비트 고성능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 어드밴스(GBA)'를 출시하면서 시장의 판도는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GBA의 압도적인 하드웨어 성능과 완벽한 하위 호환성 앞에 원더스완의 '가성비' 전략은 힘을 잃었습니다. 또한, STN 액정 특유의 심한 잔상과 어두운 화면은 GBA SP가 나오기 전까지 끊임없이 지적받은 단점이었습니다. 스완크리스탈에서 TFT 액정으로 개선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운 뒤였습니다. 결국 반다이는 2003년 2월 하드웨어 사업 철수를 선언하며, 요코이 군페이의 마지막 도전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비록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원더스완은 획일화되어 가던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다양성과 혁신을 불어넣은 명기로 기억됩니다. 세로 보기를 활용한 독창적인 게임 플레이 경험, 저전력 설계의 정점, 그리고 아마추어 개발자들을 위해 '원더위치(WonderWitch)'라는 공식 개발 킷을 판매하여 프로그래밍 저변을 확대한 공로 등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지금도 레트로 게임 수집가들 사이에서 원더스완은 '백조(Swan)'라는 이름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기기로, 그리고 전설적인 개발자의 마지막 혼이 담긴 유산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기본 정보

  • 제조사: 반다이 (Bandai)
  • 출시일: 1999년 3월 4일 (원더스완), 2000년 12월 9일 (컬러), 2002년 7월 12일 (스완크리스탈)
  • CPU: 3.072 MHz 16-bit NEC V30 MZ (인텔 8086 호환)
  • 메모리: 16KB (흑백) / 64KB (컬러) VRAM / 최대 64Mbit 카트리지 용량
  • 디스플레이: 2.49인치 FSTN LCD (224 x 144 해상도), 가로/세로 화면 전환 가능
  • 색상 표현: 흑백 8계조 (초기형) / 4096색 중 241색 동시 발색 (컬러/크리스탈)
  • 전원: AA 건전지 1개 (흑백: 30~40시간, 컬러: 20시간)
  • 크기/무게: 74.3 x 121 x 24.3 mm / 93g (배터리 제외)
  • 주요 모델: 원더스완(흑백), 원더스완 컬러(컬러 지원), 스완크리스탈(TFT 액정 개선판)
  • 최다 판매 게임: 파이널 판타지 (리메이크), 디지몬 어드벤처 시리즈
  • 총 판매량: 약 350만 대 (시리즈 합계)

역사적 타임라인

1999년 3월

원더스완 출시 (흑백)

4,800엔이라는 놀라운 가격과 AA 배터리 1개로 구동되는 효율성을 앞세워 출시되었습니다. '건페이(Gunpey)', '초코보의 이상한 던전' 등 독창적인 퍼즐 게임과 함께 시장에 안착하며 닌텐도를 긴장시켰습니다.

1999년 하반기

스퀘어의 참전과 파이널 판타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로 유명한 스퀘어가 원더스완 진영에 합류했습니다. 닌텐도 64로 가지 않고 소니 진영에 섰던 스퀘어가 휴대용에서는 반다이의 손을 잡은 사건. 이는 원더스완의 위상을 단숨에 격상시켰습니다.

2000년 7월

원더위치(WonderWitch) 발매

일반 유저들이 C언어로 직접 게임을 개발하고 실행할 수 있는 공식 개발 키트 '원더위치'를 발매했습니다. 고가의 개발 장비 없이도 누구나 게임을 만들 수 있게 한 파격적인 행보로, 수많은 명작 인디 게임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0년 12월

원더스완 컬러 출시

흑백 화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컬러 액정을 탑재한 모델이 출시되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1 리메이크'가 런칭 타이틀로 발매되며 품절 사태를 빚었고, 원더스완 시리즈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2002년 7월

스완크리스탈 출시

잔상이 심하고 어두웠던 기존 FSTN 액정을 선명한 TFT-LCD로 교체한 최종 완성형 모델. 하지만 출시 시기가 너무 늦었고, 이미 시장은 GBA와 포켓몬스터가 장악한 뒤였습니다.

2003년 2월

하드웨어 사업 철수

반다이는 수주 생산을 제외한 하드웨어 사업 철수를 선언했습니다. 판매 부진과 GBA와의 경쟁 패배가 원인이었으며, 이후 반다이는 남코와 합병하여 '반다이남코 게임즈'로 거듭나게 됩니다.

대표 게임

파이널 판타지 1, 2, 4 (Remake, 2000~2002)

단순한 이식을 넘어 그래픽과 시스템을 일신한 초월 이식작. 특히 원더스완 컬러의 판매를 견인한 일등공신이며, 스퀘어와 닌텐도의 냉전 시대를 상징하는 타이틀입니다.

디지몬 테이머즈: 배틀 스피릿 (2001)

반다이의 핵심 IP인 디지몬을 활용한 대전 격투 액션 게임. 원더스완의 버튼 감도를 잘 살린 타격감과 깔끔한 도트 그래픽, 그리고 통신 대전의 재미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건페이 (Gunpey, 1999)

요코이 군페이를 기리기 위해 제작된 퍼즐 게임. 5개의 선을 위아래로 움직여 연결하고 지우는 단순한 룰이지만, 중독성이 엄청납니다. 원더스완의 아이덴티티와도 같은 게임.

저지먼트 실버소드 (Judgment Silversword, 2004)

원더위치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여 정식 발매까지 이어진 전설의 슈팅 게임. 원더스완의 하드웨어 한계를 초월한 탄막 연출과 게임성으로, 현재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초레어 소프트웨어가 되었습니다.

클로노아: 문라이트 뮤지엄 (1999)

남코의 숨은 명작 액션 퍼즐 게임. 흑백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입체감을 살린 독특한 그래픽과 짜임새 있는 레벨 디자인으로 '휴대용 플랫포머의 정석'을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