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 소개
1990년 10월 6일, 가정용 콘솔 시장에서 닌텐도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던 세가(SEGA)가 휴대용 시장에도 칼을 빼 들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게임기어(Game Gear)'입니다. 닌텐도의 게임보이가 흑백 화면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 세가는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풀 컬러 백라이트 LCD를 탑재한 고성능 기기로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게임기어는 기술적으로 게임보이보다 훨씬 진보한 기기였습니다. 세가의 8비트 가정용 콘솔인 '마스터 시스템'의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컨버터만 있으면 마스터 시스템의 게임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등 소프트웨어 호환성 측면에서도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임기어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화려한 비주얼이었습니다. 칙칙한 녹색 흑백 화면의 게임보이와 달리, 3.2인치 컬러 화면에서 펼쳐지는 '소닉 더 헤지혹'의 파란색 질주와 '뿌요뿌요'의 알록달록한 연쇄 폭발은 게이머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별매품인 TV 튜너를 장착하면 휴대용 TV로 변신한다는 점도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능이었습니다. 세가는 성인 취향의 마케팅과 함께 닌텐도를 "구시대의 유물"로 묘사하는 공격적인 비교 광고를 통해 북미 시장에서 꽤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게임기어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바로 '휴대성'의 결여였습니다. 컬러 화면과 백라이트를 구동하기 위해 AA 건전지 6개를 집어삼켰지만, 구동 시간은 고작 3~4시간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게임보이는 건전지 4개로 15시간 이상을 버텼습니다. 야외에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주머니가 터질 정도로 여분 배터리를 챙기거나, 무거운 AC 어댑터를 항상 연결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기기 자체의 크기와 무게도 게임보이보다 훨씬 커서 주머니에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또한, LCD 잔상이 심하여 빠른 액션 게임에서는 눈의 피로를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게임기어는 게임보이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1,000만 대 이상을 판매하며 닌텐도를 제외한 휴대용 게임기 중에서는 꽤 선전했지만, 게임보이의 1억 대 판매량 앞에서는 초라한 성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가가 보여준 '휴대용 컬러 게임기'의 비전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배터리 기술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1997년 단종될 때까지 '샤이닝 포스', '소닉', 'GG 알레스터'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으며, 오늘날까지도 세가 하드웨어 팬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의 기기로 남아있습니다. 2020년에는 세가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초소형 복각 기기인 '게임기어 미크로'가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게임기어는 비록 2인자의 자리에 머물렀지만, 닌텐도가 독점하던 시장에 '컬러'라는 화두를 던지고 경쟁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휴대용 게임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어두운 이불 속에서도 소닉을 플레이할 수 있었던 그 강렬한 경험은, 배터리 광탈의 압박 속에서도 멈출 수 없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 열정이었습니다.
기본 정보
- 제조사: 세가 (SEGA)
- 출시일: 1990년 10월 6일 (일본), 1991년 (북미/유럽), 1992년 (한국 - 삼성전자 핸디겜보이)
- CPU: 3.58 MHz Zilog Z80 (8-bit)
- 메모리: 8KB WORK RAM + 16KB VRAM
- 디스플레이: 3.2인치 STN LCD (160 x 144 해상도, 4096색 팔레트 중 32색 동시 발색)
- 사운드: TI SN76489 (3채널 구형파 + 1채널 노이즈), 스테레오 출력 지원
- 전원: AA 건전지 6개 (약 3~4시간 구동)
- 크기/무게: 210 x 113 x 38 mm / 약 400g (배터리 포함 시 500g 이상)
- 주요 기능: TV 튜너 장착 가능, 마스터 시스템 컨버터 호환
- 총 판매량: 약 1,062만 대
역사적 타임라인
게임기어 발매
일본에서 19,800엔의 가격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컬러가 당연하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흑백 화면의 게임보이를 도발하며 등장했습니다. 초기에는 펭고, 컬럼스 등의 퍼즐 게임이 주력이었습니다.
소닉 더 헤지혹 발매
세가의 마스코트 소닉이 휴대용으로도 등장했습니다. 메가 드라이브 버전과는 다른 레벨 디자인과 음악을 선보였으며, 8비트 하드웨어에서도 소닉 특유의 스피드감을 훌륭하게 구현하여 게임기어의 판매를 견인했습니다.
한국 정식 발매 (핸디겜보이)
삼성전자를 통해 '핸디겜보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정식 수입되었습니다. TV 광고 등을 통해 컬러 화면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며, 국내에서도 꽤 많은 유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키즈 기어(Kids Gear) 리브랜딩
일본 내수 시장에서 판매 저조를 타개하기 위해, '버추어 파이터 미니' 등의 캐릭터 게임을 강화하고 기기 디자인을 변경한 '키즈 기어' 브랜드로 리뉴얼을 시도했습니다. 저연령층을 공략하려 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공식 단종
포켓몬스터의 등장으로 게임보이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반면, 게임기어는 하드웨어 노후화와 배터리 문제로 경쟁력을 잃고 단종되었습니다. 세가는 이후 '노매드'를 출시했지만 실패하고 휴대용 시장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대표 게임
소닉 더 헤지혹 (Sonic the Hedgehog, 1991)
세가의 상징. 작은 화면에서도 링을 모으고 루프를 통과하는 소닉의 속도감은 여전했습니다. 메가 드라이브 버전의 단순 이식이 아닌, 게임기어만의 독자적인 스테이지 구성이 돋보입니다.
샤이닝 포스 외전 시리즈 (1992~1993)
세가를 대표하는 SRPG 시리즈. 휴대용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와 깊이 있는 스토리,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RPG 불모지였던 휴대용 시장에서 빛을 발한 명작입니다.
GG 알레스터 (GG Aleste, 1991)
컴파일이 제작한 전설적인 슈팅 게임. 8비트 하드웨어라고는 믿기 힘든 고속 스크롤과 화려한 연출, 그리고 훌륭한 BGM으로 슈팅 게임 마니아들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뿌요뿌요 (Puyo Puyo, 1993)
낙하물 퍼즐 게임의 대명사. 컬러 화면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린 게임 중 하나로, 친구와 함께하는 대전 모드는 게임기어의 배터리를 순식간에 방전시키는 주범이었습니다.
미키 마우스: 마법의 크리스탈 (Land of Illusion, 1992)
디즈니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횡스크롤 액션 게임. 뛰어난 그래픽과 동화 같은 분위기, 그리고 완성도 높은 레벨 디자인으로 '캐릭터 게임은 쿠소 게임'이라는 편견을 깬 수작입니다.